Dec 9, 2010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이바라기 노리코(1926.6.12 - 2006.2.17)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길거리는 와르르 무너져갔고
엉뚱한 곳에서 
창공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죽어갔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없는 섬에서
나는 멋부릴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정다운 선물을 주지 않았다
사내들은 거수경례 밖에 몰랐고
맑은 눈동자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고집불통이었고
손발만이 갈색 빛을 발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럴 리가 어디 있냐며
블라우스 차림의 팔뚝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설치고 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 재즈가 흘러나왔다
금연 후에 피는 담배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다
나는 아주 어리석었다
나는 너무나도 외로왔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한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정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번역: Oyatree)


'한글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그녀의 기행문이 일본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것을 계기로 알게 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 그녀의 글은 따스하고 당당하다. 그런데 왜 그런지 인터넷에서는 그녀의 사진이 무척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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