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7, 2011

인도 국내 티벳인 = 난민?

 나는 일본에서 6 년 동안 살았다. 일본에는 외국인등록카드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이 카드를 발급받아 신분증으로 쓴다. 원칙상 이 카드는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불시 검문 시에 이 카드가 없으면 벌금 3000엔을 내야 한다. 극단적인 경우, 집근처 슈퍼에 물건 사러 갔다가 불시 검문에 걸리면 3000엔을 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마음씨 좋은 경찰은 주의만 주었다. 내 나라에 살면서 이런 제재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묘한 차별감과 생소한 갑갑함을 느꼈다. 외국인등록카드는 영어로 'alien card'라고 하는데, 일본에 사는 서양인들은 alien이라는 표현에 적잖은 반감을 가졌었다. 직업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일본에서 일하는 동안 일본인과 똑같은 세금을 냈고, 귀국시에 그 상당부분을 돌려받았다. 물론 엄청난 서류 작업과 시간이 걸렸지만.


 인도는 조금 더 복잡하다. 일본의 외국인등록카드에 해당하는 것이 인도에도 있는데, 내가 사는 주에서는 카드나 책자로 되어 있지 않고 서류 두 장으로 되어 있다. 외출시 이 서류를 소지하지 않는 것에 관한 법규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도 이 종이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것이 인도 국내 이동 때도 2주이상의 일정일 경우 출발과 도착신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 예컨대 델리에 사는 한국 유학생이 봄베이에 보름 정도 다녀오려면, 먼저 델리 외국인 등록소에 가서 출발 신고를 하고, 봄베이에 도착하면 며칠 이내로 그곳 외국인 등록소에서 도착신고를 해야 하며, 델리로 돌아올 때도 똑같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물론, 안 들키면 그만이지만, 만에 하나 들킨다면 엄청난 벌금을 물고, 도장 하나 받기 위해 다시 출발지와 목적지를 왕복해야 한다. 반드시. 관공서에 가서 도장 하나 받는, 어떻게 보면 간단한 절차지만, 부패가 심한 환경인지라, 뒷돈을 주지 않으면 담당자가 없다는 핑계로 몇시간씩 기다리게 하곤 한다. 실제로 어느 외국인 등록소에서 담당 직원이 '저는 당신을 위한 서비스를 하는데 어떠한 댓가도 바라지 않습니다.'라는 쪽지를 건내준 적이 있었다. 그 말은 뒷돈을 달라는 뜻이었다. 그 직원은 사실상 내게 '뒷돈을 달라'고 말한 적이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돈을 내민 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찾아갔을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도장을 찍어주면 무엇을 줄 것이냐'고 물어 나를 황당케 했다. 


 그 외에 비자와 상관없이 거주지 외국인 등록소에서 체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점은 일본도 비슷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체재 허가가 비자와 거의 일치했지만, 인도는 6개월 또는 3개월마다 관공서에 찾아가 체재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 때도 위와 같은 번거로움을 겪는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뒷돈을 주네마네로 실랑이를 벌이는 정도지만, 이런 관공서에서 티벳인들이 당하는 수모와 멸시는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 티벳인 지인이 내게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줬다. 으레 인도로 넘어와 정착한 티벳인들을 '난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인도에서 법적으로 '난민'이란 없다는 것이다. 나라를 잃고 인도로 넘어와 정착한 티벳인들은 '장기체재 외국인'일 뿐이다. 인도인이 짊어져야 할 국가의 의무를 똑같이 이행하면서 그에 부응하는 권리는 일체 부인된다. 이 점은 재일교포의 처지와 비슷하다. 물론 재일교포는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큰 차이점이 있지만. 티벳인들이 지니는 '등록증'이란 신분증에는 국적이 '티벳'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티벳은 현재 주권이 없는 중국 영토의 일부이다. 인도는 '티벳'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고 티벳의 해방을 지지하는 것인가? 글쎄. 티벳의 독립이 중국의 분열의 의미하고, 중국과 인도 사이에 안전지대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내심 티벳의 독립을 지지할지 모르지만, 티벳인들의 신분증에 국적이 '티벳'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인도의 티벳지지 의사가 드러난 것이라기보다는 60년대 이후로 인도내 티벳인들의 지위와 인권에 대한 제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현재 인도는 티벳인들을 국내 정파놀음에 이용할 뿐, 인도내 티벳인들이 가지는 의의를 고찰할 가치를 상실한 것 같은 감이 든다.


 한편, 인종적 소수의 국적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국가로 되어 있다는 점은 재일교포의 경우와 비슷하다. 재일교포의 경우,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 귀화하여 일본국적을 가진 사람, 그리고 '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 나뉜다. 일본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부분이 이 세번째 경우인데,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조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 500년'의 '조선'을 뜻하는 것이다. 한반도가 해방되고, 전쟁이 일어나 남북 두 정권이 들어서는 동안, 많은 재일교포들이 이전의 '조선'이라는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한국도 북한도 생소했고, 분단된 조국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인도내 티벳인들의 처지를 굳이 빗대자면 재일교포보다는 중국 동북지역 초기 조선인 이주자들이나 구소련의 고려인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티벳의 앞날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지금 망명 티벳사회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볼 때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들이 인도에 동화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들이 인도 사회에서 조금 더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하 'Times of India'에 실린 뗀진 쭌두의 글이다. 


원문은 여기를 클릭.


A Room for hope


인도 사람들은 나를 '칭총'이라 부르고 중국인들은 티벳으로 걸어들어가려는 나를 체포해서 감옥에서 구타하고 내보내면서 '꺼져버려, 몹쓸 인도놈'이라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인도에서 태어나 자랐고 인도의 언어를 4 개나 구사하며, 볼리우드 영화를 사랑하고 내 동포 친구보다 인도인 친구가 더 많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가진 신분증은 '등록서(Registration Certificate)'이라고 한다. 이 '등록서'에 의하면 나는 외국인이고 내 국적은 티벳이다. 하지만 인도에게 있어서 중국만 있을 뿐, 인도-티벳 국경경찰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티벳은 없다. 파르시, 버마인, 방글라데시인, 스리랑카출신 타밀인, 티벳인을 막론하고 법률상 인도에는 망명자가 없다. 내 친구 소빠는 카르나타카주 콜레갈 망명자 캠프 출신인데 카르길 전쟁
1999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일어난 영토분쟁에서 싸웠다. 양측에 있던 군인 두 명이 머리에 총을 맞았다. 생존자들은 델리에서 훈장을 받았는데, 인도인 군인들은 대통령과 사진을 같이 찍은 반면 티벳인들은 꼭대기층에서 어느 장교로부터 메달을 받았다.

방. 우리는 방을 사랑한다. 크면 클수록 좋다. 방은 우리가 사는 곳이다. 집이란 어느 먼 미래를 위한 신성한 꿈이기 때문이다. 그 꿈은 멀지만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달라이 라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망명정부 직원들도 방에서 산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들어오면 벽에다 부엌을 만든다. 다른 벽에는 책, 옷, 티븨를 두고, 물론 문과 창문도 만든다.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 그것은 집이 되고, 우리는 집들이 잔치를 벌인다. 우리의 방은 시위 표어와 총알 세례를 받은 순교자들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우리는 인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티벳에 있다. 우리는 여기에도 거기에도 없다.


나는 고향땅을, 금의환양을 그리며 자랐지만, 집은 투쟁이 있는 바로 이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투쟁이야말로 집이다. 티벳인들은 매년 순롓길에 오른다. 그러나 보드가야나 바라나시로 순례를 가는 것이 아니라 경찰서로 간다. 경찰서에 가서 한 해 더 인도에 있게 해달라고 체재연장을 신청한다. 18살 이상의 티벳인들은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1959년 당시 티벳에서 넘어온 사람도, 인도에서 태어난 사람도, 최근 티벳에서 탈출한 어느 유명인사도 예외는 없다. 그 누구도 법위에 설 수 없다. 본인이 직접 가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롭상은 스웨덴에서 웨이터 직을 얻었다. 롭상은 기뻐하며 2년 계약직을 위한 짐을 꾸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막 비행기에 타기 직전, 델리 입국심사관이 거주지 경찰서에서 출국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새벽 2시, 롭상은 공항에서 60루피짜리 밀크티를 마시고 다람살라로 돌아와야 했다.

어딜 가든, 케랄라나 라자스탄에 관광 가서 자신이 동북지역 출신자인 척 해보라. 우리는 어릴 적부터 꿈의 나라를 약속받았었다. 티벳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중국총에 불교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서원과 군사적 희망으로 맞선다. 나는 활동가로서 간디를 시도한다. 달라이 라마는 너무 복잡하다. 나는 나의 스승님을 가슴에 간직하지만, 머리로는 간디와 함께 일한다.


2008년 인도에서 베이징 올림픽 시위 운동이 일어났을 때 나는 쿨루에서 체포당했다. 그 이유는 내가 다람살라를 떠나면서 출발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다람살라에서 경찰 두 명의 감시 하에 11일 동안 구류되었고 추가로 14일을 더 구류되었다.


이젠 영연방 게임(Commonwealth Games)도 끝나고 크리켓 월드컵이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경찰들이 관심도 가지지 않는 재판에 출두한다. 최근 대법원 판정으로 인도에서 태어난 티벳인들도 인도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대학시절 인도인 친구가 얼마전 재판과 법정 투쟁을 그만두라는 부탁을 해왔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도인이야. 아마 너보다 더 인도인일 걸. 그런데 내가 왜 증명서가 필요한 건데?"

저자는 티벳인 시인이자 활동가입니다.












이하는 저명한 티벳인 논객, 잠양 노르부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


원문은 여기를 클릭.







깔론 티빠(티벳정부의 내각대신) 후보자인 롭상 상계는 화교비자(Overseas Chinese visa)로 중국에 다녀온 적이 있냐는 질문에 나(잠양 노르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같은 비자로 중국을 다녀온 적이 있다며 자신을 방어했다. 나는 그러한 중국 비자로 티벳을 다녀온 적이 결코 없음을 이 자리에서 확실히 밝히는 바이다. 1980년 나는 티벳망명정부 보안국을 통해 티벳으로 돌아오라는 라싸의 공식 초청을 받은 적이 있으나 그 제안을 그 자리에서 거절하였다. 티벳을 가고는 싶지만 가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가 화교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롭상 상계는 화교비자를 받는다고 해서 중국 국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점은 말할 나위도 없다. 중국 국적이라면 중국 여권을 가졌을테고, 중국에 가는데 화교 비자는 물론 어떠한 비자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 화교 비자를 받았다고 해서 중국국적이 안된다고는 하나, 중국 출생이거나 중국인 후손(또는 일부 조상이 중국인)이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외국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셈이 된다. 오랫동안 헤어진 이산가족을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교비자를 받아 티벳에 다녀오는 티벳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저그런 중국 학자들('위대한 학자(켈왕)'가 아닌 별볼일 없는 학자들)을 만나기 위해 화교 비자를 받아 중국 북경에 가는 것은 분명 자신이 중국인으로 간주되는 것에 이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롭상 상계의 회답을 오디오로 들으시려면 이하를 참조하시라.
 http://bit.ly/fw1sd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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