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국어 교사를 하던 시절, 한국어에 흥미를 가지고 줄곧 따라하던 학생 하나가 쉬는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엄격히 따지면 [kimuchi]보다 [g(h)imchi]가 훨씬 발음하기 쉽고 자연스러운 거 같아요." 한국어 배운지 3년째 되는 학생의 말이었다. 실제로 '기무치'와 '김치'가 완전히 같을 순 없다. 그렇다고 일본인이 악의를 가지고 김치를 왜곡하기 위해 발음을 바꾼 것도 아니다. 그들이 일본 음식으로 해외에서 김치를 등록하려는 등의 일은 그 후의 문제다. 어쨌든 길가는 일본인을 아무나 붙잡고 [김치]를 발음하게 하면, 아마 대다수가 띄엄띄엄이라도 발음할 것이다. 하지만 [김치]라는 발음은 일본어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고, 일본어로 표기 가능한 것 중에 가장 가까운 것이 [kimuchi]이다. 샌달이라는 뜻의 일본어 [zouri]를 발음하기도 어렵고 표기하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jori(조리)], 심하게는 [chori(쪼리)]로까지 승화시키는 한국은 무죄인가? 방한한 일본 연예인이 한국 토크쇼에서 [zori]를 [jori]라고 했다고 해서, 일본에 돌아가서 일본의 전통을 왜곡시키는 한국에 동조했다고 심판대에 올라야 하는가?
한국에서 이런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건 일본의 식민지배로 이어지는 상처로 인한 과민반응이기도 하고, 자기 언어에 대한 지극한 거만함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어 잘하는 미국인이 한국어를 하면서 [뤠이디어우]를 [라디오]라 발음해 주고, [쑤우뻐어마아킷]을 [슈퍼마켓]이라고 발음해주면 다들 '토종 한국인 다 됐네'라면서 좋아들 할 것 아닌가?
일개 소녀그룹이 일본에 가서 일본어를 하다 [김치]를 [기무치]라고 했다. 외화 벌어온다고 효자 그룹이라고 들뜨던 게 언젠데, 이젠 [기무치]가 한국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마냥 호들갑이다. 조금씩 마음을 넓게들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에게 사랑받고, 본의아니게 이름도 맛도 왜곡되어 한국 음식처럼 되어버린 것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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