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가야는 유독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른은 물론이고 모처럼 식당 노천 테이블에 앉아 있노라면 꼬장꼬장한 꼬맹이들이 대닐곱 명은 몰려와 먹을 것을 달라고 구걸한다. 밥 그릇에 닿일듯 말듯 내민 손길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좀처럼 떨어지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밥 한숟갈이라도 손에 얹어주면 멀찌감치서 보고 있던 다른 아이들도 우루루 몰려와 똑같이 구걸한다. '주는 사람'은 '주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아이들 무리는 어느 여행가가 표현했듯 가히 '아귀'를 연상시킨다.
그저께도 길가다 우연히 노천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친구와 마주쳤다. 그 친구와 잠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어김없이 아이들이 몰려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무시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친구에게 야채 코로케 줘도 되냐고 물었고, 친구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친구 쪽에 붙어 있던 제일 큰 꼬맹이를 내 옆으로 불렀다.
- 뚬하라 남 꺄 호? (이름이 뭐야?)
- #$@$. (까먹었다.)
- 마미 빠삐 쌉 해? (엄마 아빠 다 계시니?)
- 해. (있어요.)
- 예 카나 두스레 밧총 께 싸트 카나. (이거 다른 애들이랑 나눠 먹어.)
- 오케이.
- 웅꼬 탱큐 볼로. (저 아저씨(내친구)에게 고맙습니다 인사해.)
- 탱큐.
꼬맹이는 수줍고 해맑은 미소를 보이고는 야채 코로케를 받아 조심스레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외국인의 개념없는 적선이 아이들로 하여금 구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은 말그대로 북한에서도 자유라는 착각인 것 같다. '사회'가 모든 어린이에게 '어머니'가 될 수 있다면...
남에게 무엇을 줄때.. 쉽지만은 않은듯
ReplyDelete맞아 누나. 공양도 어렵지만 보시도 정말 쉽지 않다는 걸 갈수록 절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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