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전체를 뒤덮는 울창한 아열대 식물. 푸르디 푸른 해우의 잎이 배경인 하늘을 가릴 듯 펼쳐져 있습니다.
'해우(海芋)와 소철(蘇鐵),' 아마미섬에 있을 당시의 잇손(一村) 예술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그늘 아래로 바라보는 타치가미(立神) 바위의 모습. 아마미섬에서는 신이 머무는 곳이라고 해서 신성한 힘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잇손은 이 그림에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그렸습니다. 해우가 자라나 시들 때까지의 단계를 시간에 따라 그려 넣은 것입니다. 꽃이 피고, 붉게 맺어진 열매는 어느덧 시들어갑니다. 실제로는 이 모습을 동시에 볼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양가에 꽃이 핀 채로 그려진 소철의 숫꽃과 암꽃. 그러나 현실에서는 함께 꽃을 피우는 일이 없습니다. 잇손은 이 작품에서 무엇을 표현하려 한 것일까요? 그 힌트라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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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손은 그림을 그릴 때 종종 사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게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소철이 자라나는 과정을 찍은 열네 장의 사진입니다. 수분(受粉)한 소철에 암꽃이 생기고 점점 커갑니다. 그리고 몇달 후, 시들어서 씨가 생깁니다. 그 중에 잇손이 남긴 신기한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암꽃에 겹치듯이 찍혀 있는 것은 소철의 숫꽃입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광경을 사진으로 표현했습니다. 사실 숫꽃과 암꽃의 개화 시기에는 반년이라는 간격이 있습니다. 먼저 숫꽃을 찍은 잇손은 카메라에서 필름 꺼내지 않은 채, 몇달 후 암꽃을 촬영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잇손은 숫꽃과 암꽃을 한 장의 사진 속에 봉함으로써 생명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해우와 소철' 잇손은 이 그림을 통해 아미미의 풍경 속에서 반복되는 생과 사, 생명의 순환을 그려내고자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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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자란 아마미섬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하마다 코오사쿠 씨. 환상적인 아마미섬의 풍경으로 작품을 찍어 세계로 발신합니다. 잇손의 그림을 처음으로 봤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어쨌든 무서웠습니다. 어이구야 싶었지요. 소름이 끼치면서 무서웠습니다. 그 그림은 말이죠… 마을 사람들이 아주 신성히 여기는, 그러니까 무서운 장소, 마을의 성지거든요. 잇손 씨는 그 지점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린 겁니다. 그러니까, 잇손 씨가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장소가 바로 성지구요, 그 성지로부터 바라본 풍경이니까 무서운 거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 그림은 무시무시하다는 인상을 가지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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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미섬에는 아직도 토착 신앙이 농후하게 남아있습니다. 마을마다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있고, 사람들의 삶은 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된 채 영위됩니다. 잇손은 그런 사람들과 매일 접하면서 살았습니다. 스케치북에는 그러한 섬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금 향하는 곳은 섬 북부의 야야이 유적지입니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이 성지라 불렀던 장소입니다. 아마미 섬에는 이러한 장소가 몇 군데 있는데, 잇손도 수차례 들렀다고 합니다.
"여기가 우리가 섬기는 성지입니다. 이 뒤에 이 장소가 아주 무서운 곳인 셈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가주마루 나무가 있고 동굴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쪽을 좀 보시면 아시겠지만, 옛날의 풍장(風葬)터입니다. 저기 모래가 쌓여 있는 곳 말입니다. 그러니까 잇손 씨가 앉아 있던 장소가 이쪽이 아니라, 저쪽, 저쪽에서 여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는 셈이지요."
성지로 내려가 봅니다. 지금은 유적으로 남아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조상들이 잠드는 소중한 곳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을 했었겠죠. 그건 마음과 관련된 것이니까 마음의 의지처가 어떤 것일까, 어디에 있을까 하고 잇손 씨도 탐구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성지에 다다랐고, 그곳에 섰을 때, 뭐랄까요, 여긴 그냥 평범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잇손 씨의 모종의 감성이 오싹할 정도로 온몸에 울려퍼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걸 그린 거구요."
하마다 씨는 잇손이 그림을 그렸을 거라 짐작되는 지점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마다 씨가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성지에서 바라보는 시선에 다다라 작품을 완성시킨 것입니다. 잇손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건 백만 엔 줘도 못 팝니다. 이건 제가 목숨을 깎아가며 그린 그림이고, 염라대왕에게 올릴 선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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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앵커(강석중?) - 음. 해우와 소철. 이렇게 보니 말이죠, 성지 그러니까 신이 머무는 곳이 보이는 셈이로군요. 그러고 보면 단순히 화려하거나 디자인성이 풍부하다는 것이 아니라, 깊은 종교성까지 느낄 수 있네요.
코바야시 타다시(치바시 미술관장, 학습원대학 교수) - 저도 잇손에 처음 접했을 때는 회화적인 견해로, 형태나 색채 구도 등의 특기에만 이끌렸는데, 최근 아마미 섬에 초대받아 가서 그 섬의 시선, 풍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신, 정령이 아주 가깝다는 분위기를 느꼈어요. 잇손 씨가 살던 민가 바로 앞에는 제사를 올리는 성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섬 사람들과 접하면서 원시적이랄까, 근원적이랄까, 뭐 그런 종교적 감수성의 철학 같은 것에 깊이 공명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무섭긴 하네요, 실제로 보면."
남자 앵커 - 예. 하마다 씨도 무섭다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뭐랄까, 생과 사, 사와 생이 이어진 듯한, 생과 사가 결코 분단된 것이 아니라, 그 섬 속에서 생명의 탄생과 사멸, 그리고 그 생명이 또다시 순환한다고나 할까... 정말 대단하군요."
코바야시 타다시 - 인간의 고통을 흔히 생로병사라 하는데, 그것이 그림 속에 녹아 있어요. 섬에 사는 분들이 한 말인데, 화면 밑에는 하마나타(?)콩 꽃이 펴서 열매가 맺혀 있는데, 이 식물은 자손번창의 심볼이랍니다. 해우를 통해 삶의 시작에서 끝까지, 그리고 자손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그 너머에는 신이 머무는 타치가미(立神)라는 바위산이 있는 거죠. 이전엔 전 이런 건 전혀 이해하질 못했는데, 이건 정말 깊은 그림인 것 같습니다.
여성 앵커 - 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정말 꽃과 잎이 살아있다고 할까, 인격이 있는 것 같아요. 요염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고, 뭐랄까 생명을 느끼게 되는데요, 후마이 씨는 잇손 씨의 작품을 어떻게 보십니까?
카와무라 후마이(잇손의 친척) - 네. 치바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버렸어요. 그전부터 자기 안에 품어왔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미 섬에 갔기 때문에 이렇게 새로운 그림을 그리게 된 게 아닐까요.
남자 앵커 - 뭐랄까, 그냥 화려하다거나 장식성이 풍부하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성이 깃들어져 있네요.
코바야시 타다시 - 그런 심오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그 뭔가가 세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힘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전람회에서도 세대를 뛰어넘어 젊은 분들이 많이 다녀갔지요.
남자 앵커 - 지금 이 사회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어떤 면에서 시들어버렸다는 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이 그림과 만나게 될 때 생명의 그 뭔가를 느끼게 되는 거죠.
코바야시 타다시 - 강한 분이세요. 좌절이란 건 그걸로 끝나는 사람과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있는데, 후자의 의지를 관철하여 마지막에는 자신만의 세계를 확립시킨 것입니다. 이러한 잇손의 삶을 공감한다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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