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5, 2011

체링 외셀


작가 겸 블로거 체링 외셀, 티벳의 현실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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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네 라미레스 데 아레야노(Susanne Ramirez de Arellano)

체링 외셀(ཚེ་རིང་འོད་ཟེར་)은 어릴 적부터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외셀은 자라면서 작가가 되었고 신변에서 목격한 것을을 기록했다. 그녀가 목격한 것은 침략과 주권상실이 곧 현대사인 국가, 점령당한 국가였다. 체링 외셀은 그런 국가의 전령사가 되었다.

외셀은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1966년 라싸에서 태어났다. 외셀의 아버지는 인민해방군의 고위군관이자 공산당원이었다. 외셀은 어릴 적 집에서 티벳어가 쓰이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네 살이 되던 해 외셀의 아버지는 동부 스촨성으로 전근되었다. 외셀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중국어로 교육받으며 컸다. 외셀은 모국어인 티벳어를 읽고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사실 외셀은 티벳의 존재를 쉽게 잊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외셀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저널리스트 2년차가 되던 해 라싸로 돌아갔다. 외셀은 티벳의 대표적인 문학잡지인 <티벳문학(書臧文學)>의 편집자가 되었다. 외셀은 명성을 쌓으면서 모국을 재발견하게 되었고 모국에 대한 운율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외셀의 두번째 책인 티벳 노트(西臧筆記) 2003년에 출판된 티벳에서의 현대적인 삶에 대한 진솔한 수필집니다. 이 책은 중국당국과 마찰을 일으켰다. 이 책은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곧 금지되었다. 북경 고관들은 이 책이 조국의 통일과 결속에 해가 되는견해를 강조하고 있다고 봤다.

몇달 후 외셀에 대한 탄압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외셀은 직장인 티벳자치구 문학협회(西臧自治區文聯)에서 해고당했고, “그릇된 정치적 토양에 접어든 것으로 간주되었다. 외셀은 라싸를 떠나 북경으로 자주적인 망명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외셀은 자신의 눈으로 티벳을 직접 목격해서는 안 된다"고 고백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직업정신과 양심을 거스를' 바에 차라리 망명을 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무직자가 된 외셀은 사회적 매체를 이용해 티벳에 관한 이야기를 해 갔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스카이프 등을 통해 티벳의 현실을 표현해 갔다. 날카로운 저널리스트의 관찰과 독자들과의 친밀함을 섞는 문체로 외셀은 목격자가 되었다. “저는 티벳 작가입니다. 티벳인들의 고난은 오랜 세월 침묵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로 대체되었고, 그들은 우리의 입장에 서서 우리를 대변해 왔습니다. 저는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대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글에서 실상을 보고하려는 것입니다.”

외셀은 자신을 전통적인 의미의 저널리스트라기보다는 개인 뉴스국으로 본다. 외셀의 목소리는 티벳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가 되었고 중국 정부에 있어서 강력한 도전이 되었다. 외셀은 중국어로 교육받았기 때문에 중국 청중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 점으로 인해 그녀는 티벳관련 논쟁에 있어서 공적인 지식인의 역할을 한 첫티벳인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외셀은 티벳의 중국어 작가라고 하는 뛰어난 구성원들의 일원이다. 이들은 중국어 실력을 갖춘, 종종 중국인 작가보다도 뛰어난 중국어 실력을 갖춘 티벳 작가, 시인들이다.

외셀은 중국내 티벳관련 뉴스의 주요 소식통이 되었다. 외셀의 책은 중국에서 금지되었고 블로그는 해킹 당하거나 파괴되었다. 스카이프 계정도 해킹되거나 도둑맞았고, 티벳과 중국 전역에 있는 그녀의 지인들이 외셀을 가장한 허위 연락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가장 최근 사건은 2010 5 28일에 일어났다. 외셀은 줄곧 중국 관리들의 감시를 받아 왔으며 종종 이동이 제한되기도 한다. 외셀은 2010 8 21일 라싸에서 경찰에 의해 구류되었다. 외셀은 올림픽 기간 중에 가족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그녀는 군사 및 경찰들의 사진을 찍었다는 죄로 구류되어 여덟 시간 동안 심문을 받은 후 풀려나 북경으로 돌아갔다.

2008 3 10일 티벳 전역을 데모가 휩쓸었을 때 외셀은 중국 수도에서 가택연금 하에 놓였다. 외셀은 미국에 가서 용기있는 저널리즘상(IMWF Courage in Journalism Awards)을 수상하지도 못했다. 중국 당국이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셀은 멀리서라도 전세계에 진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혼자서 길을 걷는 저는 일종의 전령사와 아주 흡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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