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6, 2011

부처님 미소를 거두시다 仏陀、微笑みを止め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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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미소를 거두시다
힌두스탄 타임즈
2011 2 1

 ‘까르마빠는 진정 중국 첩자인가?’ ‘달라이 라마 후계자 후보는 정말 중국의 첩보원인가?’ ‘국경지역을 제압하기 위한 중국의 또다른 교활한 계략인가까르마빠 라마에 대한 억측으로 매스컴이 광기마저 띄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보도들은 가장 기본적인 조사도 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는 인도 언론매체가 어떻게 수준을 여실히 보여줬을 뿐 아니라 인도 민주주의에 대한 티벳인들의 신뢰를 동요시키며 인도와 티벳간의 장기적인 이해관계를 해치고 있다.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몇백만 루피의 현금이 발견되었다. 어찌 되었든 이는 까르마빠 사원의 관리들의 재무상의 실수이자 투명하지 않은 거래의 건이며, 이 점에 있어서는 반드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를 다른 나라의 첩자라고 의심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명성을 파괴시켜버리는 심각한 일이다. 이번 뉴스 기사는 마녀사냥을 연상케 하며, 인도내 티벳인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우곈 틴레 도제는 티벳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법맥인 까르마빠 17대이자 까르마까규파의 수장이다. 까르마빠는 달라이 라마와 중국정부에 의해 동시에 인증받은 몇 안되는 라마이다. 이 점에 대해 어떠한 음모론도 있을 수 없다. 1980년대 ~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중국은 티벳출신 종교인사들에 대해 보다 협조적이었으며, 환생자 선별 건에 있어서도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기타 망명지의 라마들과 상의하고 조정해왔다. 이러한 협조적인 분위기는 1995년 빤첸 라마 사건이 터지면서 끝나버렸다. 16대 까르마빠가 입적한 이후 (17) 까르마빠의 선별 작업에 논란이 없지는 않았다. 까르마까규파의 고승 중의 한 사람인 샤마르빠가 틴레 타예 도제라고 하는 다른 후보자를 지지한 것이다. 샤마르빠는 인도 보안기관 및 정부와 친민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티벳인들은 달라이 라마의 선택을 따랐다. 사실상 중국의 지배하에 있는 티벳에서 까르마빠는 달라이 라마에 버금가는 추앙을 받고 있다. 티벳에서는 겔룩파(달라이 라마와 빤첸라마가 속하는 종파) 사원에서도 까르마빠의 사진을 볼 수 있으며 일반 티벳인들에게 있어서 까르마빠는 달라이 라마와의 친근함으로 인해  성스러움을 더했다.

물론 까르마빠가 반중(反中)적인 정치 성명을 피해왔고, 그러므로 베이징에서도 까르마빠를 탄핵하기를 꺼려온 것은 사실이다. 이 점 또한 전혀 의심스러운 점이 전혀 없다. 중국은 1959년 달라이 라마가 망명지에서 공식성명을 발표하기 전까지 달라이 라마를 공개비판하는 것을 꺼렸다베이징은 까르마빠를 비판함으로써 티벳 독립 운동을 야기시킬 또다른 국제적 인사를 탄생시키는데 기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 까르마빠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지위를 거절해왔다. 이는 이전 티벳에서는 전통적으로 겔룩파가 우세했기 때문이다. 현재 17대 까르마빠는 오로지 종교적인 일에만 집중함으로써 전대 환생자들의 뒤를 밟고 있다.

인도 언론매체가 티벳불교내 분파정치의 뉘앙스와 중국-티벳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까르마빠의 비정치적인 입장을 의심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1999년 까르마빠가 티벳 탈출한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억측을 내놓는 것을 보면 일본의 한 음모론 영화가 생각난다. 이 영화에서 까르마빠는 시킴에 있는 룸떽사원에 보관된 흑모(黑冒)를 차지하기 위해 파견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영화를 접한 것은 베이징이었다. 문화혁명이 지속되는 수십년 동안의 압박도 티벳인들의 라마에 대한 신심을 흔들어놓지는 못했다. 이번 인도 언론매체의 맹습은 까르마빠에 대한 티벳인들의 경건심을 더욱 굳건히 할 뿐이며, 부메랑이 되어 인도를 칠 것이다. 망명처, 국경지역, 티벳 및 세계 각지의 티벳불교 신자들이 이번 모욕에 분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샤히 이맘이나 바바 람데르였더라도 언론매체는 이렇도록 신이 나서 근거없는 이야기들을 퍼뜨려대는 무례함을 범했을까?

중국의 강경노선 관리들은 지금쯤 인도 언론매체의 서커스를 바라보며 배꼽 빠져라 웃고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인도내 망명 티벳인 사회에 혼란을 야기시킬 뿐 아니라 중국내 티벳인들 사이에서도 인도에 대한 환멸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인도는 티벳을 여러번 실망시켜 왔다. 1940 년대 후반 티벳이 국제적으로 독립을 호소할 때 그랬고, 1954 년 티벳을 두고 5개조항 협약이 중국 사이에 맺어졌을 때고 그러했다. 인도는 십만 티벳인들에게 망명지를 제공했다. 그러나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 망명 라마들은 인도 군대보다도 훨씬 효율적으로 국경 지역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안정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티벳인들은 자신들을 받아준 인도에 대해 감사한 나머지 지나치게 너그럽기까지 해서 인도에게 한 가지 작만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키는 것마저 꺼린다. 현재 논쟁이 되는 국경지역은 1951 년이전까지 중국도 인도도 아닌 티벳땅이었다는 사실을. 그 대신 인도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티벳 종교지도자들의 사소한 실수가 밝혀지기도 전에 그들을 중상모략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과연 너무 큰 바램일까.

디볘시 아난드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학교 국제관계학의 조교수이자 티벳: 지정학의 희생양의 저자이며, 이 글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다




仏陀、微笑みを止める

ヒンドゥスターン・タイムズ (原文はこちらをクリック)

2011年2月1日

「果たしてカルマパは中国のスパイなのか」、「ダライ・ラマの後継者候補は本当に中国の諜報員なのか」、「国境地域を制圧するための中国のもうひとつの狡猾な計略なのか」。インドでのカルマパ・ラマに対するマスコミ報道は、憶測が深まり、やや狂気さえ帯び始めている。しかし、残念なことに、これらの報道はもっとも基本的な調査も行っていない。今回の事態はインドのマスコミの水準を如実に見せてくれるだけでなく、インドの民主主義に対するチベット人たちの信頼を損ない、インド/チベット間の長期的な利害関係に害を及ぼしている。

警察の家宅捜査で数百万ルピー相当の現金が発見された。ともかく、これはカルマパ寺院のマネジャーたちの財務上のミスであり、不透明な取引に関する事件である。その点に関しては必ず解明されるべきだ。しかし誰かをほかの国のスパイだと疑うことは、その人の名誉を毀損する重大な行為である。今回の報道騒ぎは、魔女狩を想起させるものだし、インド内のチベット人たちに対する理解不足を露呈するものでもあった。

ウゲン=ティンレー=ドジェはチベット仏教最古の法脈であるカルマパの17番目の転生者であるとともに、カルマ・カギュ派の首長でもある。カルマパはダライ・ラマと中国政府両方から認められた数少ないラマの1人である。この点においてはどのような陰謀論も成立し得ない。1980年代から1990年代初めにかけて、中国はチベット出身の宗教指導者に対しより開放的だったし、転生者選別においてもダライ・ラマを初めとしてその他の亡命先のラマたちと相談したり調整したりもしていた。このような雰囲気に終止符が打たれたのは、1995年パンチェン・ラマの事件が起きてからである。カルマパ16世が入寂した後、(17代目の)カルマパ選別作業に論争が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カルマ・カギュ派の高僧のうち1人であるシャパルパがティンレ・ターイェ・ドジェというほかの候補者を支持しだしたのである。シャマルパはインドの保安機関及び政府と親密な関係を持つことで知られるが、大多数のチベット人はダライ・ラマの選択に従った。事実上、中国の支配下にあるチベットにおいて、カルマパはダライ・ラマに継ぐ尊敬を受けている。チベットではゲルク派(ダライ・ラマやパンチェン・ラマの属する宗派)の寺院でもカルマパの写真を見かけることができるし、一般チベット人においてカルマパはダライ・ラマとの親密さによってその神聖さを増した。

カルマパは反中国的な政治声明を避けてきたし、従って北京当局もまたカルマパの弾劾を避けてきたのも事実である。しかし、この点に疑わしいところはあり得ない。中国は1959年ダライ・ラマが亡命先において公式声明を発表する前までは、ダライ・ラマを公開批判することを避けていた。北京はカルマパを批判することによって、チベット独立運動を引き起こすもう1人の国際的人士を誕生させることに寄与しないだろう。それに最近のカルマパは著しく政治的な地位を遠慮していた。これはかつてのチベットでは伝統的にゲルク派が優勢だったからである。現在、カルマパ17世は専ら法事に集中することで、歴代転生者たちの軌跡を歩んでいる。

インドのマスコミがチベット仏教内の分派政治のニュアンスや、中国/チベット関係を理解できないままカルマパの非政治的なスタンスを疑うのは誠に遺憾である。1999年カルマパがチベットを脱出したことに対し、途切れることなく憶測を生み出しているのを見ると、日本のある陰謀論映画を思い出す。この映画においてカルマパは、シッキムにあるルムテック寺院に保管されている黒帽を手に入れるため派遣されるという風に描かれている。皮肉なことに、私がこの映画に触れたのは北京であった。文化大革命の続く数十年間の圧政においても、チベット人たちのラマに対する信仰を揺るがすことはできなかった。今回のインドのマスコミの猛襲もチベット人たちの敬虔心をより固めるだけであり、ブーメランとなってインドを撃つであろう。亡命先や国境地域、チベット、そして世界各地のチベット仏教信者たちが師匠に対する今回の侮辱に憤慨するだろうからである。シャヒ・イマムやスワミ・ラムデヴだとしても、マスコミはこんなに喜んで根拠のない風説を広めるという無礼を犯しただろうか。

中国の強硬路線の官吏たちは、今頃インドのマスコミのサーカスを眺めながら笑い転げているに違いない。今回の事態がインド内のチベット人社会に混乱を引き起こすだけでなく、中国内のチベット人の間でもインドに対する幻滅を引き起こすということを彼らは知っているのである。これまでインドはチベットを何度も失望させてきた。1940年代後半チベットが国際社会で独立を訴えるときにもそうだったし、1954年チベットをおいて5か条協約が中国と結ばれたときもそうであった。インドは10万人のチベット人に亡命地を提供した。しかし、我々は忘れてはならない。これら亡命ラマたちはインドの軍隊よりはるかに効率的に国境地域の住民たちを鎮静化させ、安定をもたらしてきたということを。チベット人は自分たちを受け入れてくれたインドに対して感謝するあまり、寛大過ぎるほどで、1つ、小さいけれど不都合な真実をインド人に思い出させることさえ避けている。現在論争中の国境地域は1951年以前までは中国でもインドでもない、チベットの領土だったという事実だ。その代わりとしてインド人にできる最小限のことは、チベットの宗教指導者たちの些細なミスが明らかになりもしないうちに彼らを誹謗中傷しないことである。果たしてこれは大き過ぎる願いなのであろうか。


ディビェッシュ・アーナンドはロンドン、ウェストミンスター大学、国際関係学の助教授であり、「チベット:地政学の犠牲」の著者である。この文章は著者の個人意見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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